사순 묵상 33 - Fr.김영수 헨리코

치명자산성지 | 2020.03.29 11:35 | 조회 453

[사순묵상 33] ❈ 사순 제5주일 ❈ 

2020.3.29 치명자산성지

 

✣ 봄날은 간다 ✣

성지에는 앞 다투어 피기 시작한 봄꽃이 한창입니다.

몽마르뜨 광장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나무 아래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밟으며 함께 바치던 기도가 멈추고

침묵 속에 만나야할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적막합니다.

안창홍이라는 화가가 그린 <봄날은 간다>의 연작 중에는

자기 부인이 초등학교 시절 찍은 낡고 빛바랜 구겨진 기념사진을 초대형 벽화로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그 빛바랜 사진에서 아이들의 눈은 모두 살아있고,

나비들이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이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을 생명으로 불러내는 듯합니다.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인생을 살아가며 누렸던

아름답고 화려한 것들의 몰락과 소멸을 살려내려는 몸부림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합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요한 11,11>

사순절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사순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친구 라자로를 살리러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에 함께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처럼 우리가 머물고 있는 죽음의 무덤에서 우리를 깨우시어

생명의 삶으로 불러내시기 위하여 라자로에게 향하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5절>

예수님은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마리아도 울고 사람들도 우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신 예수님은

“주님 와서 보십시오”라고 초대하는 사람들도 우는 모습을 보시고 함께 우셨습니다.

죽음 속에 누워 있는 친구에 대한 애도,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슬퍼하는 가족에 대한 연민,

그리고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동정의 눈물이었습니다.

슬픔과 분노가 뒤엉켜 나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슬픈 운명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운명을 함께 나누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깊이 느껴집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3절>

 

가슴 속에 진실한 삶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사는 일은 슬픔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견고하지 못한 인간의 현실을 앞에서 나약한 인간성이 견디어 내야하는 운명을 대하면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그냥 웃어넘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속세의 번뇌를 웃으면서 털어버리고 운명의 굴레를 벗어 던지라고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되어 오시고 인간이 겪는 모든 현실을 몸소 겪으신 예수님의 삶의 어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시며

고뇌하고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어 우리를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내 가슴에 응어리진 눈물을 쏟아낼 용기를 주시고

내가 울면서 사랑과 고통, 슬픔과 기쁨이 어우러진 내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침묵 속에서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려움과 어둠에 묻혀있는 우리의 무덤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 생명의 빛에로 부르십니다.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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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오늘 저희 무덤의 돌을 치우고 당신의 생명으로 나오게 하소서. ❈

  • 안창홍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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